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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ESG 딥다이브

미국은 왜 품질 낮은 '베네수엘라 기름'에 집착하는가

셰일 혁명의 그늘: 미국 정유 산업을 지탱하는 '중질유'의 경제학

 

 

초중질유의 역설

 

일반적으로 원유는 채굴이 쉽고 정제가 간편한 '경질유(Light Crude)가 우수한 자원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력을 행사하면서까지 끈적거리고 불순물이 많은 베네수엘라의 초중질유에 욕심을 내는 것일까요. 물론 겉으로는 다른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명분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순히 통제할 수 있는 원유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상위권은 아니지만 미국은 자체로 매장량이 적지 않은데다 생산량으론 압도적인 세계 1위입니다. 미국은 2018년경부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원유 생산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 비중은 대략 15%선이며 NGL(Natural Gas Liquids, 천연가스를 채굴할 때 함께 섞여 나오는 액체 상태의 탄화수소 혼합물) 등을 포함하면 20%를 넘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런 미국에게 품질이 안 좋은 베네수엘라 산 원유가 필요할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요약하면 미국 정유 산업의 고도화한 설비에 맞춰 수익성을 높이고, 세계 에너지 가격 결정권을 확보함으로써 관세 전쟁의 국내 충격을 상쇄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석유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거나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관세 상승에 따른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에 대한 비토 인플레이션압력을 낮출 수 있다가 더 정확한 분석이겠습니다. 국제정치와 지정학적 고려는 한눈에 보이는 포석이고요.

베네수엘라 중질유
오리노코 벨트 (Orinoco Belt)

 

미국 정유 산업에 "왜 품질 낮은 기름이 더 돈이 되는가?"

 

미국 걸프 연안 정유공장들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도입할 때 수익이 극대화하는 이유는 가격 할인폭과 고도화 설비 가동률의 결합에서 찾아집니다.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에서 생산된 메레이16(Merey-16)은 이 나라의 대표적 수출 기준유(export benchmark), 품질 결함(고유황, 고금속)으로 국제 지표인 브렌트(Brent)유 대비 배럴당 6~15달러(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심할 때는 20달러 이상) 쌉니다.

 

여기에다 미국 정유공장들은 고도화 마진(Coker Margin)’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엔 공정이 비교적 간단한 셰일오일(경질유)에 비해 중질유는 '코커(Coker)'라는 설비에서 열분해 과정을 거치기에 생산비용이 더 듭니다. 그렇긴 하지만, 중질유을 정유하는 과정에서 찌꺼기(잔사유)를 값비싼 디젤과 항공유로 변환할 수 있는데, 이때의 '석유제품가와 원유가의 차이(Crack Spread)'가 경질유를 정제할 때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배럴당 5~10달러 높게 형성됩니다. 한마디로 원가는 줄이고, 생산비가 늘어나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큼 비싼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중질유를 수입해 사용할 때 최종 이익이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베네수엘라산 중질유가 미국의 원유 주종인 셰일오일과 상호보완 관계라는 점입니다. 미국산 셰일오일은 '초경질유', 단독 정제 시 디젤 생산 수율이 낮습니다. 셰일오일에 베네수엘라의 중질유를 섞어(Blending) 정제하면 전체 공정의 화학적 밸런스가 맞춰지며, 설비 부하를 줄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걸프 연안 정유공장의 다수가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하였으며 셰일오일만 투입해선 가동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의 주요 정유사는 중질유의 잔사유를 처리하는 코커(Coker) 설비에 특화하였기에 셰일오일(API 40~50)만 투입하면 이 설비가 유휴 상태가 되어 정제 마진이 하락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입니다. 미국 정유사들이 국내산 셰일오일을 수출하면서 동시에 외국산 중질유를 수입하는(Crude Swap) 이유는 이 수율 불균형 때문입니다. 당연히 경질유 원유를 수출하지 정제한 경질유를 수출하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셰일오일(Shale Oil)'셰일(혈암)' 층에 갇힌 기름을 의미합니다. 관행적으로 셰일이란 말을 쓰지만 정확하게는 타이트 오일 (Tight Oil)’이 맞습니다. 셰일을 포함하여 치밀 사암(Tight Sandstone), 치밀 석회암(Tight Limestone) 등 입자가 너무 고와서 기름이 스스로 흐르지 못하는 모든 '치밀한 암석층'에서 뽑아내는 기름을 통칭합니다.

 

물류의 경제학: 베네수엘라(해상) vs. 캐나다(육상)

 

미국 정유 설비의 이처럼 까다로운 '입맛'은 천문학적 돈을 들여 중질유(Heavy Oil)를 정제하도록 최적화한 데서 비롯합니다. 특히 2018년경부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원유 생산국이 되면서 쏟아져 나오는 자국산 셰일오일(경질유)만으로는 이 설비들을 100% 가동할 수 없기에, 비싼 설비를 놀리지 않으려면 중질유를 계속 수입해 섞어야 합니다.

 

미국 정유사 입장에서 서부캐나다산원유(WCS)와 중동산 원유라는 대안이 있지만, 최근 급증한 수요를 감안할 때 베네수엘라라는 선택지가 더 생기는 건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류의 유연성이 높아지고 비용 구조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WCS와 비교할 때 머레이16은 해상 운송을 통하기에 압도적인 효율성을 자랑합니다.

 

베네수엘라(Jose )에서 미 걸프 연안까지 유조선(Aframax)으로 3~5일이면 도착합니다. 반면 캐나다 오일샌드는 4,500km 이상의 파이프라인이나 철도를 거쳐야 합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카리브해에서 미국 걸프 연안까지 해상 운임은 배럴당 약 4달러 미만 수준입니다. 캐나다산 원유가 파이프라인 정체로 철도로 운송될 때는 배럴당 12~15달러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중질유라는 게 무겁고 끈적거리기에 파이프를 통과하는 데에 애초에 효율이 낮기도 합니다.

 

파이프라인은 매설된 경로로만 기름을 보낼 수 있지만, 해상 운송은 수요가 급증하는 특정 정유 터미널로 즉각 경로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베네수엘라는 미 걸프 연안의 전용 하역 터미널 인프라와 이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가 없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베네수엘라 중질유

 

"중국의 독점 프리미엄 박탈"

 

그간 중국의 민간 정유사(티팟)들은 미국의 제재로 갈 곳 없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제재 할인'을 받아 헐값에 독점 수입해 왔습니다. 중국의티팟 정유사(Teapot refineries)’작은 찻주전자처럼 규모가 작고 국영이 아닌 독립 정유사를 가리키는 업계 은어입니다. 중국 중앙정부가 소유·통제하는 대형 국영 석유기업은 빅 보일러(big boiler)’라고 합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을 회복하고 공급망을 정상화하면, 중국은 더 이상 이 저가 원료를 독점할 수 없게 됩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중국 석유화학 산업의 원가 경쟁력을 약화하고 경제적 압박 수단이 됩니다. 중국으로선 러시아산과 이란산 비중을 확대하거나 국영사를 통해 우회 공급해야 하겠지요. 세금 조정 등 업계에 대한 지원을 검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가하는 경제적 타격보다는 국제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트럼프가 움직인 주요 동인일 것입니다. 미국 정유업계의 이익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베네수엘라를 미국 경제권 내로 완전히 편입함으로써, 미국의 앞마당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국내 정치 및 거시 경제: 관세 전쟁의 충격 흡수

 

베네수엘라와 이 나라의 원유를 장악함으로 트럼프가 얻는 이익은 에너지 가격 하락을 통한 관세 부작용 상쇄입니다. 무차별적 관세 전쟁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고 수입물가 상승으로 부작용이 본격화할 즈음에 물가의 최종심급격인 원유의 세계 최대 매장지를 확보함으로써 국내정치와 시장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관세 인플레이션의 방어막이 됩니다. 보편적 관세 부과로 공산품 가격이 상승할 때 에너지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 미국 국민의 가처분 소득 감소를 막을 수 있습니다. 디젤 가격이 내려가면 미국 내 트럭 운송비와 기차 물류비가 직접적으로 하락합니다. 또한 관세로 비싸진 수입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륙 물류 마진'을 흡수하여 최종 소비자 물가 상승을 억제합니다.

 

에너지는 현대 농업의 핵심 투입재(비료 제조, 농기계 연료)입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 확대로 국제 유가를 하향 안정화한다면, 식품 가격의 하락을 유도하여 국민 체감 물가를 획기적으로 낮추어, 혹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착시를 불러일으켜, 트럼프가 정치적 승리를 거둘 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왜 품질 낮은 '베네수엘라 기름'에 집착하는가
베네수엘라 석유 전략은 원유 자원 확보를 넘어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이다. 자료: 픽사베이

 

악은 디테일에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 전략은 원유 자원 확보를 넘어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입니다. 정유사는 싼 원료 도입을 통해 정제 마진을 극대화합니다(수익성 개선). 국가는 유가 하락을 통해 관세 정책의 인플레이션 부작용 상쇄합니다(거시 경제 안정). 안보 측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남미 영향력을 원천 차단합니다(지정학적 패권).

 

이러한 삼각 전략은 초중질유라는 품질 낮은 자원을 미국의 고도화한 기술력과 결합하여 강력한 경제/국제정치의 무기로 재탄생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전략은 어떻게 보면 논리적 정합성과 경제적 합리성을 가진 영리한 설계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베네수엘라가 독립국가이며 미국 영토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에서 찾아집니다. 트럼프의 행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법이나 정의, 윤리 등 보편적인 가치를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괴물 제국주의 국가가 등장했음을 웅변합니다. 에너지 기반의 약탈적 세계 질서 재편에서 명분에 구애받지 않고 체면따위는 차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활개치는 세상의 도래를 목격합니다.

 

글쓴이 안치용

아주대학교 융합ESG학과 특임교수이자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ESG연구소장입니다. 인사조직 및 CSR을 전공한 경영학 박사로서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차관급)을 역임하며 공공 거버넌스 정책 수립에 참여하였습니다. 경향신문에 기자로 22년 재직했으며 그중 10년가량을 사회책임 전문기자로 글로벌 ESG 트렌드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카이스트(KAIST) 대우교수, 경희대 경영대학 및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등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학술적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현재 국가기술표준원 ESG전문위원회 위원, ISO 53001 심사원(보) 등으로 활동하며 국제 표준에 기반한 실무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정책, 실무를 융합한 독보적인 분석으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우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확산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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