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작동한 탄소 상쇄(Carbon Offset) 제도가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했습니다. 탄소 상쇄란 어떤 기업이나 개인이 온실가스를 스스로 줄이지 못했을 때,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없앤 실적을 '돈을 주고 사서' 자신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는 제도입니다.
최근 2025년 7월, 구체화한 유럽연합(EU)의 2040년 기후 목표와, 2024~2025년에 걸친 파리협정 제6.4조의 단계적 가동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동안 '현대판 면죄부'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기존 탄소 상쇄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이것을 실질적인 탄소 감축 수단으로 재건하려는 국제 사회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시장은 부끄러운 과거의 '상쇄 1.0' 시대를 지나, '상쇄 2.0'이라 불리는 '파리협정 신용 메커니즘(PACM: Paris Agreement Crediting Mechanism)'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다만, 탄소 상쇄는 본질적으로 외부에서 감축한 실적을 내부 성과로 인정받는 구조적 특성을 지니기에, 그 효용성에 관한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여전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1. CDM의 치부와 시장의 신뢰 붕괴
탄소 상쇄의 시초는 교토의정서의 청정개발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였습니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 실적(CER, 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을 자국의 감축분으로 인정받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CDM은 초기 설계의 허점과 관리 부재로 인해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했습니다.
HFC-23 '게이밍' 사건: 탄소 시장 최악의 스캔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HFC-23(수소불화탄소)과 관련한 중국의 이른바 '게이밍(Gaming)' 사건(2010~2013년)입니다. HFC-23은 에어컨 냉매인 HCFC-22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 가스로, 온실효과(GWP)가 이산화탄소보다 무려 14,600배(IPCC 제6차 평가보고서 기준)나 강력합니다.
당시 중국과 인도의 냉매 공장들은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게이밍'을 벌였습니다.
- 수법: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 불릴 만한 이 공장들은 단순하고 저렴한 기술을 이용해 가스를 일부러 더 생산한 뒤, 이것을 다시 파괴하여 크레딧(수익증권)으로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 비용 대비 수익: HFC-23 1톤을 파괴하는 비용은 0.2달러 미만인 반면, 발행된 크레딧은 유럽 시장에서 15달러 내외에 거래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은 최대 약 60억 달러(약 8조 원)로 추정됩니다.
- 규모: 당시 파괴된 가스량은 이산화탄소 환산 시 약 5억 톤에 해당하며, 이는 웬만한 국가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이만큼의 가상 온실가스를 만들고 없애면서 돈을 벌겠다고 한 발상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 결과: 심지어 중국 정부는 이 수익에 65%의 세금을 부과해 국고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국제사회는 이 사기극에 분노했으나, 참여자들이 유엔의 방법론을 기술적으로는 준수했기에 지급된 돈을 환수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EU는 2013년부터 해당 크레딧 사용을 전면 금지하며 이것을 시장에서 퇴출했고, 이 사건은 탄소 시장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되었습니다.
민간 부문의 사고: 베라(Verra)의 '유령 크레딧'
정부 규제와 상관없이 기업이나 개인이 자발적으로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에서도 사고가 있었습니다. 2023년 초, 세계 최대 민간 탄소 인증기관인 베라(Verra)가 발행한 열대우림 보호(REDD+) 크레딧의 90% 이상이 실제 감축 효과가 없는 '유령 크레딧'임이 밝혀졌습니다. 비행기 이용 후 배출량을 상쇄하려던 개인과 기업들의 선의가 무색하게도, 베라는 예측 모델을 과장하여 보존되지 않았을 숲이 보존된 것처럼 꾸몄다는 비판을 받으며 '상쇄 회의론'을 확산시켰습니다.
2. 상쇄 2.0: PACM의 등장과 엄격한 기준

이러한 실패를 딛고 탄생한 '파리협정 신용 메커니즘(PACM)'은 엄격한 기준을 도입했습니다.
주요 국제 합의 과정
- COP29 (2024년 11월, 바쿠): 개막 첫날, 조홍식 기후환경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방법론 개발 표준'과 '탄소 제거 표준'을 전격 승인하며 법적 기반을 조기에 구축했습니다.
- COP30 (2025년 11월, 벨렘): 분야별 세부 방법론과 각국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록부(레지스트리) 연동 지침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상쇄 2.0의 핵심 원칙
- 보수적 기준선(Baseline) 설정: 해당 사업을 안 했을 때의 배출 추정치를 매우 엄격하게 잡아 감축량을 부풀리지 못하게 합니다.
- 추가성(Additionality) 입증: 이 사업이 아니어도 어차피 일어났을 일이 아니라, 오직 이 사업을 통해서만 감축이 일어났음을 입증해야 하는 'But-for' 원칙입니다.
- 누출(Leakage) 및 영속성(Permanence) 관리: 감축 활동이 다른 곳의 배출을 늘리지 않아야 하며, 감축 효과가 장기간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중 계상(Double Counting) 대처
CDM 체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이중 계상은 한 개의 감축 실적을 두 나라가 동시에 자기 것으로 기록하는 모순을 말합니다.
- 사례: 인도네시아에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진행한 후 그 크레딧을 한국이 사들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거에는 인도네시아도 자국 영토 내에서 줄었으니 실적으로 잡고, 한국도 돈을 주고 샀으니 실적으로 잡아 하나의 감축분이 두 번 계산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 해결책 (상응 조정):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상응 조정(Corresponding Adjustment)'입니다. 이제 실적을 판매한 국가(인도네시아)는 자국의 전체 감축 실적에서 판매분만큼을 의무적으로 차감(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매국(한국)이 그 실적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 간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핵심 기술적 장치입니다.
하지만 우려도 여전합니다. 미얀마의 조리개량 사업(PoA 10415)이 과학적 기준보다 실적을 26배나 부풀려 발행할 계획임이 드러났고, 기존 CDM 프로젝트 1,389개가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신청하면서 이른바 부실 프로젝트의 '표지갈이'에 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3. EU의 전략적 고육책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EU는 2040년까지 순배출 90% 감축이라는 강력한 목표를 세웠으나,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등 일부 회원국의 반발로 약간의 유연성을 부여했습니다. 2021년부터 금지했던 CDM 크레딧 대신, 파리협정 6.4조에 따른 새로운 크레딧은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제한적 허용과 보호무역주의
- 제한: 여전히 기업의 크레딧 활용은 금지되며, 회원국 정부만이 NDC 달성을 위해 5% 범위 내에서 2036년부터 활용할 수 있습니다.
- 불균형 해소: 싱가포르(40% 활용) 등 상쇄를 대폭 활용하는 타국과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EU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입니다. CBAM은 일종의 보호무역 수단으로, 탄소 배출 비용을 아낀 타국 제품에 대해 유럽 배출권 가격에 해당하는 '탄소 관세'를 매기는 것입니다.
- 전략적 계산: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된 CBAM을 통해 EU는 역내 기업들을 '직접 감축'이라는 가시밭길로 내몰고 있습니다. 타국 기업들이 상쇄라는 임시방편에 의존하며 혁신을 미루는 동안, EU가 넷제로 제조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여 미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고도의 계산입니다.
4. 한국의 과제: 비용 중심에서 신뢰와 기술 중심으로
대한민국은 2030 NDC 달성을 위해 약 3,750만 톤(감축량의 12.8%)을 국제 감축 실적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국내에서 직접 줄이지 않고 사실상 외국에서 돈으로 사들여 상쇄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비중 또한 상당히 높습니다.
기후 기술 혁신의 도구로 재정의
산업 특성상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조건 EU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상쇄 2.0' 시대를 마주한 한국에게는 시급한 과제가 있습니다.
- 질적 선구안 확보: 이제 탄소 시장은 '얼마나 싸게 사느냐'에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변모했습니다. 부실 프로젝트를 걸러내는 선구안이 국가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 탄소제거기술(CDR) 투자: 재생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대기 중 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다양한 기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 사회적 침로 설정: 탄소 상쇄를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닌, 기후 기술 혁신의 도구로서 재정의해야 합니다.

2040년의 대한민국은 EU에 견주어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과거 상쇄 제도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는 이제 단순한 면죄부 구매가 아닌 실질적인 기후 혁신을 향한 국가적 침로를 잡아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 글은 '소셜 코리아'에 게재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아주대학교 융합ESG학과 특임교수이자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ESG연구소장입니다. 인사조직 및 CSR을 전공한 경영학 박사로서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차관급)을 역임하며 공공 거버넌스 정책 수립에 참여하였습니다. 경향신문에 기자로 22년 재직했으며 그중 10년가량을 사회책임 전문기자로 글로벌 ESG 트렌드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카이스트(KAIST) 대우교수, 경희대 경영대학 및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등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학술적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현재 국가기술표준원 ESG전문위원회 위원, ISO 53001 심사원(보) 등으로 활동하며 국제 표준에 기반한 실무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정책, 실무를 융합한 독보적인 분석으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우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확산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SG와 인문학 등의 주제에 관한 40여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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