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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인사이트

영화 <어쩔 수가 없다>와 ‘다크 팩토리’: 구직을 향한 광기 어린 질주 끝에 마주한 불 꺼진 공장의 묵시록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부터 체념과 강박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소설 『엑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구직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중산층 가장 만수(이병헌 분)의 폭주를 그립니다. 그러나 예민한 관객이라면 그의 살의보다도 더 서늘한 공장의 풍경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숨결이 완전히 거세된 채 자동화한 공간,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를 연상시키는 묵시록적 결말에 강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저 스미스의어둠이 현실이 되기까지

 

다크 팩토리라는 개념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시작은 1980년대 제너럴 모터스(GM)의 로저 스미스 회장이 꿈꿨던라이츠 아웃(Lights-out)’ 제조 공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그는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사람이 전혀 필요 없는, 불을 꺼도 돌아가는 공장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40년 전의 기술력은 기계들끼리의 충돌조차 막지 못했고,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인공지능(AI)과 고도화한 로봇 기술은 로저 스미스가 보았던 그어둠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복잡한 연산과 감지 기능을 이제는 적외선 센서와 초고속 데이터 전송이 대신합니다. 기계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조명이 필요 없으므로, 이제 공장의 조명은불필요한 비용이자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크 팩토리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다크 팩토리'란 주제로 형상화한 이미지. AI 생성.

 

스마트 팩토리를 넘어 다크 팩토리로: 지능화에서 무인화로

 

흔히스마트 팩토리다크 팩토리를 혼용하곤 하지만, 두 개념 사이에는 명확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는 데이터와 지능형 시스템을 통해 공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인간과 기계의협업이 강조됩니다. 데이터가 흐르지만, 여전히 그 데이터를 판단하고 관리하는 인간의 눈을 위해 불이 켜져 있는 공간입니다. ‘스마트가 경영의 언어이자 장밋빛 미래라면, 그것은 아직 인간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는 스마트 팩토리의 종착지이자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스마트의 본질은 결국 변수인 인간을 제거하는다크로 향합니다. 여기서는 협업이 아닌대체가 일어납니다. 조명이 꺼졌다는 것은 단순히 전기를 아끼는 차원을 넘어, 그 공간에서 인간의 실존적 자리가 소멸했음을 의미하는 섬뜩한 선언입니다. ‘다크는 더 이상 경영의 수사가 아닌, 우리 삶의 실존에 관한 언어입니다.

 

보는 방법의 전복: 가시광선에서 적외선과 데이터로

 

다크 팩토리의 '어둠'은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교체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가시광선 아래에서만 사물을 인지하고 노동할 수 있는 생물학적 한계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공장의 조명은 노동자의 인권이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다크 팩토리의 주인인 기계는 다릅니다. 그들은 조명 대신 적외선 센서로 거리를 측정하고, 0 1로 이루어진 데이터 전송을 통해 사물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합니다. 기계의 눈에는 어둠이 장벽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을 위한 조명은 센서의 작동을 방해하거나 불필요한 열을 발생시키는 노이즈일 뿐입니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가시광선에서 데이터로 전복되는 순간, 그 공간은 인간이 감히 발을 들일 수 없는 이질적인 영역이 됩니다. 영화 속 만수가 마주한 어둠은 바로 이 인지적 단절에서 오는 공포입니다.

 

몰아세움(Gestell)과 프로메테우스적 부끄러움

 

이러한 다크 팩토리의 현상은 현대 철학자들의 예리한 통찰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순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인 '몰아세움(Gestell)'으로 정의했습니다. 현대 기술은 자연과 인간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부품(Bestand)'으로 몰아세웁니다. 인간은 존재한다(ist)기보다 대기 중이다(steht bereit)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다크 팩토리 안에서 인간은 더 이상 창조적 주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효율을 저해하는 비효율적인 자원으로 전락합니다. 불이 꺼진 공장은 하이데거가 경고한, 만물이 데이터와 자원으로만 환원되는 '존재의 망각(Seinsvergessenheit)'이 실현된 공간인 셈입니다.

 

귄터 안더스가 말한 프로메테우스적 부끄러움이란 개념도 떠오릅니다. 이 개념은 영화 속 주인공의 폭주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안더스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기계의 완벽함과 효율성 앞에 스스로를 초라하고 불완전하게 느끼는 심리를 지적했습니다. 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하며 일터로 돌아가려 애쓰는 광기는, 기계의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결핍을 폭력으로 메우려는 몸부림으로 읽힙니다. 결국 다크 팩토리는 인간이 만든 창조물에 의해 창조주인 인간이 '시대착오적 존재'가 되어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AI 생성 이미지

 

인간의에서 기계의전기

 

다크 팩토리가 던지는 또 다른 충격은 에너지 소비 주체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과거의 공장을 돌리는 원동력은 노동자의 근력과 정신력이었습니다. 노동자는 ''을 먹고 그 에너지를 노동으로 치환했습니다. 기업은 노동자의 복지와 식사를 챙기며 에너지를 관리했습니다.

 

반면 현대의 다크 팩토리는전기라는 단일 에너지에 모든 것을 의존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이 꺼진 공장은 겉보기엔 고요하고 서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전력을 집어삼킵니다. AI와 대규모 서버, 정밀 로봇들은 인간의 식사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탄소 중립을 위해 화석 연료를 줄여야 하는 동시에,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불 꺼진 공장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쥐어짜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이 낮은 한국 경제로서는, 인간의 밥그릇 대신 기계의 플러그를 챙겨야 하는 가혹한 에너지 전쟁에 직면한 셈입니다.

 

기술적 생존과 실존적 소멸 사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다크 팩토리가 약속하는 미래는 완벽한 제조 경쟁력과 오류 없는 생산성입니다. 국가적으로 AI 주권을 지키고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크 팩토리는어쩔 수 없는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미래의 풍경 속에는 가장 중요한인간이 빠져 있습니다.

 

과거의 기술적 진보가 인간의 노동을 돕는 방향이었다면, 다크 팩토리가 예고하는 미래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 소외하는 미래입니다. 영화 속 만수가 직장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인간의 빛이 사라진 공장에 도착한 것처럼, 우리 역시 생존을 위해 기술을 도입하지만 그 끝에는 우리가 설 자리가 없는 절망의 아이러니한 미래를 건설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굴레를 넘어서

 

어쩔 수가 없다는 이 영화의 제목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지워내고, 스스로를 기계 부품화하려는 우리 시대의 강박을 관통합니다.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공장의 불을 남보다 빨리 꺼야 하는 처지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어둠 끝에 기다리는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진정으로 아름다운 곳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전력인 재생에너지를 공급해 가며 기계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발전일까요? 4차 산업혁명의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차가운 어둠을 보며, 우리는 지금 효율의 대가로인간의 존재 의미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찰로 바꿀 수 있는 게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글쓴이 안치용

아주대학교 융합ESG학과 특임교수이자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ESG연구소장입니다. 인사조직 및 CSR을 전공한 경영학 박사로서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차관급)을 역임하며 공공 거버넌스 정책 수립에 참여하였습니다. 경향신문에 기자로 22년 재직했으며 그중 10년가량을 사회책임 전문기자로 글로벌 ESG 트렌드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카이스트(KAIST) 대우교수, 경희대 경영대학 및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등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학술적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현재 국가기술표준원 ESG전문위원회 위원, ISO 53001 심사원(보) 등으로 활동하며 국제 표준에 기반한 실무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론과 정책, 실무를 융합한 독보적인 분석으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우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확산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입니다.